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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hinuh Lee

[기고글]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하는 작곡과의 모습

Updated: Aug 20, 2020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하는 작곡과의 모습 이 신 우


나는 이 글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느낀 작곡과 학생들의 변화와 이에 대한 교수로서의 고민, 그리고 학교 측의 제도적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11호와 12호에 실린 두 글, 이용석의 「무기력한 작곡과, 새로운 활력을 상상하며」와 신예슬의 「‘현대음악’이라는 낡은 올가미」를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원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마주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작곡과에 나타난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학과로서는 커리큘럼에 대한 여러 개선 방안들을 고민하며 시도하고 있으나, 학교 측의 개선 의지와 노력의 분량과 속도보다 더욱 커져 버린 현대음악에 대한 피로감과 작곡과의 무기력증은 종말을 고하는 한 시대의 마지막 끝자락에 위태롭게 서 있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학교마다 각기 다른 규모와 시스템, 지향점이 있기에 여기서 이야기하는 바는 어디까지나 내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 작곡과의 경우로 국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주요 음악 교육기관 중 하나인 서울대학 학생들의 목소리와 교수들의 고민과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추후 특별했던 시대를 지나 새로운 시대로 돌입하는 오늘을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은 쓴다.


우리의 현재


달라진 세상과 작곡과

달라지고 있는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새 천년에 들어선 이후부터 이미 그 징후가 나타났고, 최근 십년 동안 거의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세상이 이미 완전히 다른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인식했을 것이다.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서구 아방가르드 현대음악을 배우기에 열심이었고 그 결과로 많은 젊은 작곡가들이 국제콩쿠르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낯설고 난해한 음악이었지만 작곡가들 대부분 이 새로운 음악에 대해 한국인 특유의 순종적(?) 자세와 근성으로 돌파하며 그 음악어법과 철학을 배웠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음악 장르가 한국 대학의 작곡과가 추구할 유일한 가치로 인식될 수 있는 유효기간이 이제는 완전히 지나버린 듯하다. 세상이 바뀌었고 세대가 바뀌었다.

더 이상 학생들은 현대음악사에 기록되었거나 세계 유수의 연주단체나 기관에 의해 연주되는 작품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존경을 표하지도 추종하지도 않는다. 비록 교수에게 직접적으로 의사 표현은 못할지라도 자신의 마음과 머리, 귀로 반응하는 음악 외에 학교나 작곡계에서 유의미하고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 음악을 억지로 참아가며 배우고자 하는 세대가 아니다. 서구 현대음악이 추구하는 가치와 양식, 어법에 대한 1980년대식의 일방적 교육과 강요는 현 세대에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입학과 동시에 학생들의 지원에 따라 지도교수가 배정되고 각 교수마다 성향이 비교적 분명한 서울대 작곡과의 경우 학생들의 요청에 의해 얼마든지 원하는 교수에게로 클래스를 옮길 수 있다. 특정 양식에 대한 비판이나 현대음악 악보상의 복잡성과 정교함에 대한 무언의 강요는 희미해진지 이미 오래다. 또한 대중음악이나 영화음악을 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는 학생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지도교수들이 학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서울대 작곡과 교수들은 현대음악을 학생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여기서 ‘현대음악’은 작곡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로 쓴다]. 교수 개인의 취향이나 미학관이 여전히 영향을 미치겠으나 이제는 어떤 스타일이냐를 떠나서 좋은 작품을 발견하고 싶을 뿐이다. 실제로 과거에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던 부수음악이나 대중 친화적 성격의 작품도 정말 잘 만들어진 경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물론 ‘학교에서 발표하는 작품은 이런 유의 음악이어야 한다’는 식의 잘못된 강박관념이 학생들 사이에서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나,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할 것이냐는 이제는 정말 학생 자신의 선택이다. 재학 중 대중음악 분야로 자기 사업을 개척한 학생 벤처 사업가도 있고, 주식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 경영대학으로 전과해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각자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학교는 이미 충분히 열려 있다.


연주자 앞에 서면 ‘을’이 되는 작곡과 학생들

작곡과 학생들의 여러 불만 중 하나는 곡을 쓰더라도 실제로 들어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심혈을 기울여 쓴 졸업 작품이 연주 며칠 전 연주자 사정으로 취소되어 힘들게 다른 연주자를 구하는 해프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곡과에서 기획하는 모든 공연은 전자음악을 제외하고 모두 연주자의 손을 거쳐야만 한다. 지난 2년 동안 작곡과 재학생들에게 여러 차례 의견을 조회한 바, 이 중 압도적으로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자신들이 쓴 작품을 바로바로 들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학부의 모든 재학생은 총 네 학기 동안 작곡포럼에서 작품을 발표해야 하고 졸업연주를 이수해야 한다. 학과에서는 예산을 책정하여 학생들에게 작품 연주료를 지원한다. 그런데도 종종 연주자에 의해 공연 직전 연주가 취소되는 불상사가 있다. 여러 다른 이유들이 있겠으나 작곡과 학생들이 연주자 앞에서 늘 부탁하는 입장이 되어버리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모든 전공은 각자의 전공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 해도 연주자의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 차선의 선택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대해 학내에 창작품 연주가 당연시되는 풍토를 왜 그간 만들지 못했냐고 지적할 수 있겠다. 학과 또한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여러 해결 방안들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작곡과만의 문제가 아닌 음악대학 전체 시스템과 문화의 문제다. 현재 일곱 개 전공으로 이루어진 음악대학은 각 전공별로 다양한 음악회를 개최한다. 두 개의 심포니 오케스트라ㆍ두 개의 관악합주ㆍ타악기 앙상블ㆍ현악합주ㆍ합창ㆍ오페라 그리고 국악 관현악과 실내악까지, 이 모두 수업과 연계되어 정기연주회로 진행되는 행사들이다. 그러므로 기악과와 국악과 학생들은 제각각 모두 이 수업들을 소화하기에 바쁠 수밖에 없다. 특히 관악 전공의 경우 오케스트라와 관악합주를 모두 수강해야 한다. 솔리스트 양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경우, 오케스트라와 관악합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우, 실내악을 강조하는 경우, 작곡가와의 협업을 통한 창작품 연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우 등, 이 모두 다 제한된 수의 연주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야만 한다.

게다가 음악대학에서 주관하는 크고 작은 음악회들은 모두 학생 수준을 넘어 높은 질적 수준의 프로페셔널 한 공연을 추구하고 있고, 대부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나 롯데콘서트홀 같은 대한민국 최고의 공연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 중인 일이지만, 전공별로 커질 대로 커져 버린 행사 규모와 눈높이ㆍ커리큘럼을 대학 차원에서 조정한다는 것 또한 그렇게 단순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졸업 연주를 앞두고 대부분의 연주 전공 학생들이 모두 오케스트라나 오페라 공연에 투입되어 연주자를 외부에서 구해 와야 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 또한 이제는 서울대학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작곡과 졸업생들의 시장(市場)은 어디?

1980년대에는 적어도 순수음악 작곡에 정진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작곡과 학생들은 학부나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유럽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귀국 후에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대학에 교원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이 작곡계의 중심이었고, 어떤 의미로 시장이었으며, 작곡가인 동시에 교직을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학이 더 이상 과거 1980~90년대 시장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작곡과 교원의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지금, 그렇다면 작곡과 학생들이 졸업 후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은 도대체 어디인가.

신예슬의 주장대로 현대음악은 “이때쯤 끝날 운명이었거나, 마침내 모든 청중이 등을 돌렸거나, 작곡가마저 현대음악을 떠났고, 이 분야의 자원이 고갈되어 창작의 가능성이 사라졌거나, 현대음악이 추구하던 가치가 무효해 졌”[신예슬, 앞의 글, 32]을 지도 모르겠다. 현재 파악할 수 있는 순수음악 시장이라면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하는 연주단체들의 상주작곡가 제도와 위촉, 지자체의 문화 사업, 작곡 동인 단체 및 대학 프로젝트나 시리즈로부터의 위촉과 연주자 개인 위촉 정도일 것이다. 정부지원금이 보장되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연주 단체로부터 정상적인 위촉료를 받고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대학의 기초이론 강의와 개인 레슨 등 다른 경제 활동을 병행하지 않고는 작곡가들이 생계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1980~90년대식으로 ‘참고 작곡을 연마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식의 다소 무책임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수는 없다. 비록 나는 이런 수련 과정을 거쳐 유학과 동시에 콩쿠르와 작품 공모를 통해 커리어를 쌓고 대학 교수직 또한 얻었지만, 우리 세대는 유학하고 돌아온 대부분이 교수가 되는, 운 좋게 특별했던 시대를 살았지만, 현재 학생들이 마주한 현실은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정말 음악이 좋고 작곡하는 것이 좋고 불투명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음악이 더더욱 좋아서 혼신의 힘을 쏟을 자세와 마음가짐이 되어있는 학생에게만 과거 나의 학창 시절에 경험했던 것과 같은 방식의 레슨이 가능하다.


학교의 개선책과 노력들


오작의 여러 호에서 여러 필자들에 의해 다루어진 현대음악에 대한 비판과 이와 연결된 시장의 부재, 작곡가들의 암담한 현실에 관해서는 이미 충분한 공감대가 널리 형성된 것 같다. 이와 같은 현실은 잠시 뒤로 하고 이제는 좋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적 개선책과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비록 현대음악이라는 특별했던 시대적 산물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으나, 많은 작곡가들이 ‘현대음악’이라는 장르에서 ‘나의 음악’, ‘오늘의 음악’, ‘이 시대, 지금 여기, 이 곳의 음악’으로 문화 식민지적 근성을 벗어 던지고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일단은 내 자신이 그러하고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의 작곡과가 그러한 방향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현재를 보고 작품을 쓰고 강의를 하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현대음악이 거의 사망 직전이라는 여러 징후들이 우리 작곡가들에게는 오히려 절호의 기회다. 우리는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서구 유럽과 미국에 대한 식민지 유산의 스트레스와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여기, 그리 환상적이지는 않지만 우리 토양의 대한민국 문화 현실 속에서 진솔하게 우리의 음악을 써 나갈 수 있다.

또한 기존 사회 제도 속에서 안전하게 연착륙할 생각만 버린다면 우리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지금이 아직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시장이자 열린 세계이다. 다만, 그 길이 아직 닦여 있지 않다. 우리 학생들은 그 길을 이제 닦으며 나아가야 한다. 이미 대로로 나 있으나 쇠퇴기에 접어든 유럽과 미국의 클래식 또는 현대음악 시장과 시스템이 아닌 미개척지인 한국 그리고 아시아에서!


커리큘럼

그간 대학과 학과 차원에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제도적으로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서울대학은 노력해 왔다. 커리큘럼은 여전히 개편 중에 있지만 연주와 작곡이 괴리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음악대학 내에 수업 형태로 존재하는 여러 편성들, 심포니 오케스트라ㆍ관악합주ㆍ타악기 앙상블ㆍ합창 등등에 작곡과 학생 작품을 매 학기 편성하여 워크숍이나 작품 연주 기회를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18년 1학기에는 관현악법 수업과 연계하여 학생들이 편곡한 베토벤 작품의 리딩 세션을 진행했다. 이를 위해서는 작곡과 교수진과 기악과ㆍ국악과ㆍ성악과 교수진과의 사전 협의와 조율이 필요하며, 매 학기 교과목으로 개설된 다양한 연주 편성을 어떤 방법으로 작곡과 학생 작품과 연계할지 논의해야 한다.

또한 지난 2년에 걸쳐 작곡가와 연주자가 함께 작품을 제작하고 직접 공연을 올리는 실습 교과목이 대거 개설되었다. 작곡전공에서 개설한 실습 교과목으로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현대음악 연주 및 제작실습’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뉴뮤직 프로덕션 랩’ㆍ‘음악극 창작 워크샵’ㆍ‘공연 예술로서의 음악’ 등이 있다. 이 중 ‘현대음악 연주 및 제작 실습’은 국악과와 작곡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으로, 작곡-연주의 선명한 경계선 없이 학생들이 팀별로 협의하면서 워크숍을 통해 최종 결과물을 내는 팀 프로젝트이다. 2018학년도 1학기에는 ‘자연과 건축’이라는 주제 아래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부석사 등을 수강생 약 20여명과 함께 현지답사 했고, 이후 작곡가와 연주자가 각각 팀을 이뤄 총 네 팀이 쇼케이스에서 결과물을 발표했다. 이 수업에서 발표된 두 작품은 수정 작업을 거쳐 ‘스튜디오2021’ 무대에서 재공연 되고 추후 ‘SNU 프로덕션’의 음반 등으로 발매할 계획을 갖고 있다.

작곡ㆍ연주 분야 학생들이 최대한 함께 작업하며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 공연하는 것을 목표로 신설된 이러한 교과목들은 기악과와 국악과에서 각각 개설된 ‘공연현장실습’과 ‘해외현장학습’과 더불어 음악대학 학생들이 공연 제작을 실습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학기 ‘현대음악 연주 및 제작실습’을 수강한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보면, “이 수업이 아니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 좋았다”, “새로운 것을 우리끼리 만든다는 것이 좋았다”, “다른 과 친구들과 작업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작곡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음악대학 수업이 더 발전되어 나가길 기대한다”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았다. 이 수업들의 공통점은 공연 장소를 학교 콘서트홀이나 외부 대표적 공연장 등으로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넓은 캠퍼스의 모든 장소가 무대이며, 새로운 개념의 공연 형태를 젊은 세대 스스로 실험하고,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자신들의 청중과 무대, 공연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수업의 주요 목표이다. 물론 시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보완이 필요한 이 수업들은 리뷰와 수강생 의견 수렴 및 사회와의 연계를 통한 시스템 마련 등 해결해 나가야 할 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다.


프로젝트

실습 교과목과 더불어 프로젝트는 주로 학과, 스튜디오2021, 그리고 음악대학 및 대학 차원에서 진행된다. 작곡과에서는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해 학과에 제출하는 공연기획안의 소요 경비를 실험실습비를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재학생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예산을 신청할 수 있다. 또한 올 10월에는 클라리넷ㆍ첼로ㆍ피아노로 구성된 독일의 연주 단체 ‘트리오 캐치(Trio Catch)’가 스튜디오2021에 초청되어 학생 작품 리딩 세션과 공연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 총 네 명의 학생을 선발하여 작품을 위촉했다. 두 명의 대학원생 작품은 트리오 캐치가, 두 명의 학부생 작품은 트리오 캐치가 지도하는 앙상블2021 아카데미 장학생들이 연주한다.

스튜디오2021은 올해부터 작곡과 연주 파트를 분리하여 독립 운영과 협업을 동시에 가동하고 있다. 연주 파트는 주로 스튜디오2021의 상주 전문 연주단체인 ‘앙상블2021’의 정기 공연으로 진행되는데, 프로 연주자들과 학생 연주자들을 연계하기 위해 2018년 2학기부터 앙상블2021 산하 총 열 명의 아카데미 장학생들을 선발했다. 이들은 앙상블2021 상임 멤버들의 지도 아래, 심사를 통해 선발된 작곡과 학생들의 위촉 작품을 연주하고 또한 20세기 이후 작품으로 구성된 아카데미의 공연에 참가한다.

2016년과 2017년에는 특별히 서울대 총동창회의 후원으로 음악대학 주관의 융복합 프로젝트인 ‘지브라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선발된 팀들에게는 총 2백만원의 제작비가 지원 되었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연주자를 쓰거나 멀티미디어나 전자음악ㆍ설치음향 등을 활용해 서울대 관악 캠퍼스 곳곳에서 전시 및 공연을 진행했다. 작곡과와 국악과ㆍ기악과 학생들, 음악을 복수 전공하는 인문대나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이 함께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장소 섭외 등 공연에 필요한 모든 행정 지원은 음악대학 기획홍보실을 통해 공식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창의적인 모든 가능성들을 마음껏 실험해 볼 수 있는, 캠퍼스 전체가 무대인 실험적 프로젝트였다.

서울대학에는 학생처 주관으로 매 학기 일주일 간 열리는 예술주간 ‘아트 스페이스’가 있다. 캠퍼스 곳곳에서 음악ㆍ미술ㆍ문학ㆍ체육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한껏 어우러질 수 있는 이 무대는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노력한 학생들에게 음악대학 기획홍보실 차원에서 선별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음악대학을 방문하는 교류 대학 학생들의 쇼케이스가 올라가기도 하고, 수업이나 프로젝트를 통해 선발된 우수한 팀 프로젝트가 이 플랫폼을 통해 재공연의 기회를 갖기도 한다.


국제 교류

지난 20년 동안 많은 음악인들이 스튜디오2021과 작곡과를 다녀갔다. 크리슈토프 펜데레츠키ㆍ탄둔ㆍ소피아 구바이둘리나ㆍ마이클 피니시ㆍ사이먼 베인브리지ㆍ데이비드 러드윅 등 초청 작곡가들의 강연에서 그들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었고, 유현아ㆍ웬신 양ㆍ쉔 할레비 같은 연주자들과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의 워크숍ㆍ마스터클래스에도 학생들이 적극 참가했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 학생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교육 방법은 더 이상 이와 같은 방식의 일방적 가르침만이 아니다. 그동안 주로 유럽과 미국 위주의 음악가들이 서울대를 방문했다면, 이제는 아시아권 대학들과의 적극적 교류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클래식 음악의 종주국인 유럽의 전통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일방적으로 추종하던 과거의 문화식민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아시아 음악대학들과의 상호 교류를 통해 아시아의 새로운 클래식 음악문화 전통을 새롭게 세워 나가고자 함이다.

이것은 우리 음악의 정체성과 방향, 음악 산업 및 세계 음악계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작곡과 동료 교수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이다. 아시아는 인접한 지리적 위치와 유사한 전통과 문화 속에서도 왜 유럽과 같이 활발하게 음악적 교류와 협업을 하지 못했는가. 이는 아마도 철도로 연결된 유럽과 달리 가까운 거리임에도 항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크게 작용하겠으나, 실제로 교류를 진행해 보니 유럽과 미국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한 비용과, 같은 동양인이라는 친밀성, 문화적 유사성으로 인해 ‘왜 이제야 이러한 교류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후회가 들 정도였다.

2017년 8월 태국 갈야니 바드하나 공주 음악원(PGVIM, Princess Galyani Vadhana Institute of Music)에 작곡과 교수 한 명과 학생 세 명을 파견해 심포지엄과 워크숍 및 연주회를 열었다. 전통악기 연주자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아시아의 전통 악기를 접하며 즉흥 연주를 배움과 동시에 소리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경험하는 색다른 시간이었다. 2017년 4월에는 싱가포르 용시토 음악원에 교수 한 명과 학생 두 명을 파견하여 페스티벌로 모인 세계 각국의 작곡과 학생들과 각자의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가졌으며, 홍콩 공연예술 아카데미와, 상하이음악원과도 이와 유사한 방식의 상호 교류 방문을 추진 중에 있다.

최근 들어서는 초청 작곡가 또한 유럽과 미국이 아닌 아시아 작곡가들을 주로 초청하고 있다. 2017년에는 싱가포르 작곡가 조이스 고(Joyce Beetuan Koh)의 강연과 작곡 마스터클래스가 있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멀티미디어 등 융복합 장르 작업을 포함한 그의 작품과 작업 방식 및 사고의 매력, 학생들을 대하는 수평적이고 진솔한 태도 등이 학생들의 큰 반응과 참가를 이끌어낸 것 같다.

교류 학교의 학생 활동에서 나타나는 현상도 흥미로웠다. 전혀 다른 문화권 학생들로부터 받는 에너지, 다른 음악관과 생기로 인해, 우리 학생들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놀랄 정도로, 서울대에서 볼 수 없었던 자유롭고 독창적인 면이 드러났다. 이때 교수의 역할은 가르치지 않고 학생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교수의 경험과 판단으로 가르치려 들면 들수록 학생들이 가진 놀라운 창의력과 생기,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빛을 보지 못하고 움츠려든다. 우리 세대의 경험과 판단이 우리 학생들의 세대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창의적인 분위기와 환경을 마련해 주고 학생들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야말로 변화하는 시대와 학생들을 통해 새롭게 터득한 교육 방식이다.

학과가 아닌 음악대학 차원에서 올해 새롭게 시작된 국제교류도 있다. 2018년 2월에는 제네바 음악원을 비롯하여 총 7개국 8개 학교로부터 4명의 교수진과 12명의 학생을 초청하여 약 일주일간 SNU 국제 음악 캠프를 개최했다. 국악과ㆍ작곡과ㆍ기악과의 연합으로 진행된 이 캠프에서는 작곡 부문에 참가한 싱가포르 용시토 음악원 학생 두 명의 작품과 버밍엄시티대학교 박사 과정 학생 작품, 그리고 서울대 작곡과 학생 작품 세 편을 연주했다. 이 캠프는 학과간의 긴밀한 협조와 조율을 통해 앞으로 첫 해에 발견된 문제점들을 보완하여 보다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캠프로 거듭나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운영 방식에 대한 고민들

위에 언급한 열려 있는 기회들의 공통점은 작곡과 학생 모두에게 필수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리딩 세션ㆍ쇼케이스ㆍ위촉 등은 모두 학생들의 자발적인 신청에 의해서만 기회가 주어진다. 과거 스튜디오2021에서 꽤 많은 학생 작품 공모를 진행했다. 그러나 바쁜 학사 일정과 시험 등으로 인해 곡 마감에 제대로 공모 작품을 제출하는 학생이 매우 적었기에, 이후 보다 많은 학생들에 참가를 독려하고자 프로젝트 지원 신청서와 완성된 자유 편성의 작품 1부를 제출해 작곡과 교수회의 심사를 통해 선발된 학생들에게 작품을 위촉하고 연주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연주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연주자와의 관계 형성에 부담감을 갖는 작곡과 학생들을 돕고자 여러 채널로 수업 및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지만, 작곡포럼과 졸업연주 만큼은 연주자 섭외를 학과 측에서 담당하지 않는다. 작곡과 학생 스스로 연주자를 구하고 리허설 및 연주를 준비하는 것도 작곡가로서 마땅히 해나가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졸업연주까지도 연주단체를 섭외해 진행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최소한의 전공 필수 수업만큼은 학생들 스스로 해봐야 사회에 나가서 자생력이 있지 않겠냐는 교육적 판단에 따라 이 두 교과목의 연주는 작곡과 학생들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공연 예술 패러다임의 변화와 세계 음악대학들의 움직임


지금 학생들이 사회로 진출할 시기에는 과거와 같은 전통적 공연 형태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공연 예술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적 패러다임에 따라 새로 개설된 실습수업들은 작곡과ㆍ국악과ㆍ기악과 교수진이 공동으로 강의를 담당하고 있으며 서로의 분야에서 전문적 지도 아래 학생들이 보다 넓은 안목을 가지고 다양하게 융합하여 학생들의 창의적인 시각 아래 새로운 공연 예술 형태를 실험하도록 설계되었다. 스튜디오2021을 비롯한 여러 프로젝트들이 여러 전공의 연합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이미 음악대학 내 정착되고 있는 융복합적 새로운 문화이다.

융복합ㆍ복수학위ㆍ공동학위ㆍ음악과 사회라는 이름으로 개설되고 있는 보다 폭넓어진 새로운 분야들과 학위들, 더 이상 서구 음악계의 행보를 뒤쳐져 쫓아가는데서 벗어나 아시아의 주체적인 새로운 클래식 음악 문화 전통을 세우려는 노력들. 이 모든 움직임들은 지난 2년간 참가했던 ‘음악대학 태평양동맹(PAMS, Pacific Alliance of Music Schools)’ 학장단 회의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사회와 괴리된 대학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커리큘럼과 사회 속 활동을 연계해서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사회에 녹아들며 기여할 수 있는 시스템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동맹에 참가하는 학교 모두 커리큘럼과 학위 과정의 개편에 주력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로스앤젤레스 남가주대학교의 토른톤 음대(USC, Thornton School of Music)의 사례다. 로스앤젤레스 중심부에 위치한 토른톤 음대는 2003년 대학의 사명과 커리큘럼을 평가하며, 예술 리더십 학위 신설, 영화음악 학위를 시작으로 대중음악 학위까지 신설하는 개혁을 시도했는데, 많은 교수들의 걱정 속에 추진된 이 학위 과정이 놀랍게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까지 생각지 못한 상승효과를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로버트 큐티에타 학장 서면 인터뷰 「미래를 위한 음악대학의 준비」, 서울음대 매거진 『울림』 21호, 2018. 13-17쪽 참조]. 큐티에타 학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추가한 것이 클래식 음악과 재즈 음악을 가르치는 뛰어난 학교라는 명성을 축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존 영역들을 새롭고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재정의함으로써, 그리고 이 시대의 학생들을 반영함으로써, 기존 교과과정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음악을 ‘재-창조자’로 여기는 클래식 음악 학생들”과 달리 대중음악 학생들은 “음악을 ‘창조’하고자 하고, 자신들이 음악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구체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오며, 자신의 미래에 뚜렷하게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클래식 음악 전공 학생들에게도 긍정적 효과를 일으킨 주요 이유라고 보았다[앞의 글, 15].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 나아가는 이와 같은 활발한 움직임 속에서 죽어가는 현대음악과 작곡가들의 암울한 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이제는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시대에 다소 동떨어진 행보는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지난 2년간 변화하는 시대를 인식했고, 커리큘럼과 학위, 프로젝트 및 다양한 국제 교류를 통해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대처하려는 세계 각 대학들의 발 빠른 움직임들을 보아왔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은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학생들이 이러한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부딪치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가지고 음악가로서 또는 공연 예술 분야의 종사자로서 새로운 형태의 무대를 개척해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 길은 과거의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잘 닦여 있는 대로(大路)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우리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듯이 공연 예술 분야의 변화 또한 단언하기 어렵다. 이미 죽어가고 있다고 사방에서 진단하는 현대음악은 어떤 식으로든 그 명맥은 유지될 것으로 보이고, 전통적인 클래식 공연 무대 역시 다수의 청중 층을 확보하든 공연 이익을 남길 수 없는 음악가의 지인들로 객석이 채워지든 간에, 이 역시 당분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작곡과가 맡고 있는 기초이론 강의도 음악대학 전체를 담당하기에 갑자기 축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강사 자리와 이를 발판으로 이루어지는 레슨 시장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 자리를 위해 연구 실적으로 인정되는 연주자의 개인 독주회 역시 주요 공연장을 채울 것이다. 작곡과 연주 공히 우리 신세를 한탄하듯 모두가 입을 모아 개탄하는 이 시장 아닌 왜곡된 시장은 죽어가는 한국 음악계의 생명을 유지하는 인공호흡기로 당분간은 명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변화는 시작되었고 이미 새로운 시대로 돌입 했기에 더더욱 현대음악이 아닌 ‘오늘의 음악’으로 이 시대를 개척하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창의적으로 도전하는 우리 작곡가들과 학생들의 몫이다.


작곡가로 산다는 것


작곡과 학생을 거쳐 작곡가로 교수로 살아온 세월이 벌써 30년 째 접어들고 있다. 전업 작곡가의 꿈을 가지고 유학을 떠났던 시절만 해도, 또 한국에 돌아와 교편을 잡고 교육과 창작을 병행했던 10년 전만 해도 내가 작곡가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았고 공연 예술계가 나아질 거라는 철없는 믿음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꿈꿔 왔던 고상한 무대는 한국에서 교편을 잡으며 교육과 창작을 병행하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저편에 있으며, 이 또한 서구 유럽 문화를 숭배하는 문화식민지적 발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부끄럽게도 불과 몇 년 전일뿐이다. 한국 사회에 내가 기대하는 순수음악 작곡가를 위한 시장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마주하고 이를 받아들이는데 정말이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걸 깨달은 지금은 작곡과 학생을 거쳐 작곡과 교수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행운의 시대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시장 아닌 시장에서 작품이 연주되고 조금이라도 다수의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무대의 크고 작음과 청중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내 음악에 감동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음에 이 또한 감사하다. 무엇보다 작곡가는 근사한 무대와 뛰어난 연주자, 청중들의 이해와 환호를 넘어 삶의 ‘근원적’인 것에 창작의 뿌리를 두어야 함을 더욱 절실히 깨닫고 있다.

기존 한국 사회의 대학 시스템 속에서 그래도 작곡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우리 세대와 달리 지금 학생들의 상황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작곡과 교수들은 우리가 현재 이 사회에서 누리는 이 모든 것에 대하여 빚진 자의 마음으로 다음 세대를 힘써 지원해야 한다. 이에 대한 실천의 하나로, 나는 소속 대학에서 커리큘럼ㆍ프로젝트ㆍ국제교류를 비롯한 교육 활동을 통해 우리 학생들이 작곡 기술을 연마함과 동시에 최대한 많이 노출되고, 부딪치고, 폭넓게 경험하여 아직 제대로 닦여지지 않은 그 길을 스스로 개척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교육 활동에 앞서 작곡과 교수들은 무엇보다 작품으로 학생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극소수의 전문화된 청중을 위한 현대음악이든 대중적 성격의 음악이든, 기존 클래식 공연 무대에 어울리는 작품이든 실험적인 융복합 장르의 작품이든 간에, 학생들은 자신의 선생이 24시간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최선을 다해 작곡가로 살아가는지, 교수직 유지를 위한 실적용 작품만을 쓰고 교수라는 사회적 보장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지 모두가 안다. 무대가 작든 크든, 위촉료를 많이 받든 적게 받든, 아예 돈 한 푼 못 받고 작곡을 하던 간에, 우리 학생들은 스승이 오롯이 작곡가로 흘린 땀방울과 노력에 대해 존중하고 존경할 수 있는, 아직 사회의 고단함에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다. 변화하는 이 시대에 작곡과 교수로서 교육 활동과 더불어 우리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암울한 시대에 여전히 꿈을 꾸고 그들의 심장이 뛰게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노년의 연주자가 매일 새벽 시간에 일어나 같은 스케일을 반복하며 살아있는 동안 최선의 연주력을 유지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처럼, 삶이 끝나는 날까지 이와 동일하게 작곡가로서 살아 내는 것이라 믿는다.

작곡과 학생과 교수, 작곡가 모두 새로운 꿈을 꾸며, 현대음악이 아닌 ‘오늘의 음악’을 쓰면서 변화하는 이 시대를, 새로운 콘텐츠를 들고 용기 있게 개척해 나가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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