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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Shinuh Lee

[연재] 21세기 비올리스트에게 투영된 우리 소리 판소리

Updated: Dec 18, 2020

이신우교수의 음악이야기 <11> 카프리스 제 2번 《적벽 赤壁》

비올리스트 이화윤 KBS FM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 유튜브 영상 캡처


최근 들어 BTS의 몇몇 무대를 보기 시작했다. 다이너마이트, 아이돌 두 곡 모두 다 한국 전통예술 소재와 결합한 무대였다. 평소 국악과 한국 전통미술, 건축에 관심을 갖고 필자도 이를 소재로 작품들을 써 오고 있던 터라 대중음악에서는 어떻게 이를 소화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들의 무대는 필자의 세대들이 흔히 갖는 아이돌에 대한 선입견을 재고하게 할 만 했다. 전통음악과 건축, 무용 등의 고유성을 거의 그대로 보존한 상태에서 이와 나란히 그들만의 강렬함, 세련됨, 역동성과 개성을 병치했다. 클래식과 국악이 거리가 먼 만큼, 대중음악, 특히 힙합과 같은 장르와 국악, 한국 전통무용, 건축이 이와 가까울 리 없지만 이들의 무대는 상이한 두 장르가 묘하게 어우러졌고 마치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양 그들만의 자유로움과 끼를 마음껏 발산했다.


우리나라 전통음악과 예술은 오랜 시간을 통해 형성된 격조와 품위, 깊이가 있기에 필자는 작품에서 이를 함부로 작곡가 개인의 취향에 의해 변형하거나 재단하는 것을 지양해 왔다. 올해 발표한 작품 중 비올라를 위한 카프리스 《적벽 赤壁》은 필자가 그간 유지해 온 이러한 신중함을 깬, 나름의 과감한 시도가 반영된 작품이다.


이러한 시도는 주어진 조건, 즉 KBS FM의 ‘2020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 음반 프로젝트 중 비올리스트 이화윤의 독집 앨범에 수록될 한국적 요소에 의한 신작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화윤은 안네 소피 무터를 비롯한 클래식음악계의 거장들과 함께 자주 세계무대에 서는 재능 넘치는 비올리스트로, 어려서 판소리를 공부한 경험이 있다.


판소리를 공부한 그녀의 장점을 활용하고자 이를 소재로 선택하기로 했다. 판소리 열 두 마당을 들어보며 이화윤과 어울릴만한 부분을 찾던 중, 적벽대전을 재구성한 적벽가의 한 부분이 귀에 들어왔다. 날아드는 화살과 포화 속, 속절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병사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쉴 새 없이 읊어대는 빠른 부분과 이어지는 느리고 처량한 곡조는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슬픔을 진솔하게 드러냈다.


이 부분을 소재로 쓰기 시작한 필자의 카프리스 《적벽》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곡에 비해 유난히 최종 완성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곡가 고유의 상상력과 아이디어에 근거한 작품의 경우 온전히 그것이 작곡가의 것이기에 창작이야 늘 어렵지만 어쨌든 자유롭다. 쓰는 기법 역시 작곡가가 주로 사용하는 기법의 연장선에 있지 특별히 전환기에 있는 작품이 아니고서는 전혀 쓰지 않던 기법이 갑자기 새롭게 느닷없이 전면으로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다른 작품보다 몇 단계의 작업과 손질, 그간 필자가 구사하던 것과 전혀 다른 판소리라는 감각과 어법을 다루어야 했기에 녹록치 않은 과정의 연속이었다.


선택한 적벽가의 부분은 많은 의성어가 포함되어 있고 이는 명창들의 고유한 해석과 방식에 의해 조금씩 다르게 표현된다. 우선 선택한 판소리 부분을 모두 듣고 채보하였다. 수도 없이 듣고 채보한 부분을 여러 단계에 걸쳐 손질하고 재구성한 후, 판소리와는 전혀 다른 비올라라는 서양 악기의 이디엄에 맞게 다시 고치고, 어색한 부분에 새로운 패시지들을 작곡해 추가하고 다시 손질하는 등, 많은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작품이 완성되었다.


카프리스 《적벽》은 비올라와 실제 판소리의 고수와 함께 하는 이중주이다. 동양과 서양, 지금으로부터 몇 백 년 전 조선시대 마당 한복판에서 벌어진 판소리를 현재로 끌어와 21세기 한국의 전도유망한 비올리스트를 위해 그녀에게 딱 맞는 음악의 옷으로 예쁘게 새로 지어 입혔다. 새로 지은 옷을 제대로 입은 이화윤의 활 끝으로부터 들려지는 카프리스 《적벽》. 이 소리는 한국 전통음악을 이 시대의 감성과 작곡가 고유의 언어로 연결하여 새로 빚어낸, 우리 소리 판소리에 대한 한 작곡가의 음악적 헌사(獻辭)이다.


KBS FM 영상 링크 : https://youtu.be/Ko-xtqwzOR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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