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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Shinuh Lee

“4분의 37박자...저 밑에는 대지가 쫙 깔려있다”

지휘자 장윤성·작곡가 이신우 인터뷰

서양음악 대표주자, 국악관현악과 만남

‘이음음악제’서 실험적 파괴적 작업

국악-서양음악 경계 지우고 틈 좁히며

장르간 교류 통해 또 다른 언어 창조

가장 한국적·세계적·독특한 음악

지휘자 장윤성(왼쪽)과 작곡가 이신우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창작음악 축제인 ‘이음 음악제’의 시작을 알리는 ‘비비드(Vivid) : 음악의 채도’ 무대로 관객과 만난다. 두 사람은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이어간다. 임세준 기자


“한 마디 안에 4분 음표가 37개가 들어 있어요. 4분의 37박자인 거죠. 보통의 서양 음악엔 4분 음표가 3~7개 정도예요. 저 밑으로는 대지가 쫙 깔려있고요. 굉장히 실험적이고 파괴적이에요.” 지휘자 장윤성(59)은 비올라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대지의 시’ 악보를 펼치며 이렇게 말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작곡가 이신우(53·서울대 작곡과 교수)에게 위촉한 곡이다. 이신우 작곡가는 “기품있고 기개 높은 조선 문인들의 모습을 국악관현악과 비올라의 품격으로 담았다”고 했다. 어쩌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질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서양음악계의 대표주자들이 국립국악관현악단과 만났기 때문이다. 장윤성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와 이신우 작곡가다. 두 사람은 올해로 2회를 맞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창작음악 축제인 ‘이음 음악제’의 포문을 여는 주인공이다. 이음제의 시작을 알리는 ‘비비드(Vivid) : 음악의 채도’(9월 22일, 해오름극장)는 2022~2023 시즌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첫 관현악 시리즈다. 이신우를 비롯한 양승환, 이정호 작곡가가 쓴 위촉 창작곡 세 곡을 초연, 장윤성 지휘자가 국악관현악에 새 옷을 입힌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장윤성 지휘자는 “‘이음’이라는 것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며 “세대와 세대, 악단과 악단은 물론 서양음악을 해온 지휘자, 작곡가와 국악관현악의 이음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보여주고자 하는 지향점이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양음악의 어법에 익숙한 이들에게 국악관현악을 쓰고, 지휘하는 과정엔 깊은 고민들이 따라왔다. 서울대 음악대학 작곡과 최초의 여성 교수, 영국 왕립음악원 ARAM(Associate of the Royal Academy of Music) 선정 등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신우 작곡가는 “그간 국악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신중한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악의 어법을 연구, 서양음악으로 펼치는 시도를 해왔으나 국악관현악을 작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 작업으로 이신우 작곡가는 “내 언어를 조금 더 강화하고,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작곡가들은 국악은 잘못 쓰면 작곡가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국악만 남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해요. 저 역시 너무 전형적인 국악의 사운드가 나오는 것, 전통 안에서만 국악기를 바라보면 국악 외에 개별 목소리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 고민이 됐어요.” (이신우) 비올라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대지의 시’는 작곡가가 순천만과 여수 등 남해의 봄을 여행하며 만난 “자연의 생생한 에너지”를 담아낸 곡이다. “자연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보다 자연을 돌아다니며 느낀 제 영감과 정신성, 한 사람에게 투영된 치유력을 담고자 했어요.” 이 곡엔 “서양음악과 국악이 반반씩” 섞였다. 악기 구성도 절반으로 나뉜다. 첼로와 더블베이스, 서양의 타악기가 함께 하고, 비올라가 솔리스트로 들어온다. 이신우는 “작곡가가 뭔가를 많이 하지 않고, 국악관현악과 비올라의 소리와 에너지만 잘 전달해도 대지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며 “내가 추구하는 세계를 국악기가 잘 구현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위촉된 세 곡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대표 레퍼토리인 ‘바르도’를 연주할 장윤성 지휘자는 “처음엔 재밌을 것 같았다가, 악보를 익히고 난 뒤엔 내가 왜 이걸 하려고 했을까 난감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국악기라는 것이 참 추상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악기의 이름만 알았지 그 악기에 어떤 깊이 있는 내용이 있는지 다 알진 못했더라고요.” 국악기로 구성한 관현악단이지만, 서양음악의 악단과는 너무도 다르기에 지휘자로서의 소통 방식도 고민했다. 장윤성 지휘자는 “때론 나의 요청사항이 단원들에게 결례가 되는 건 아닌지 고민도 했는데, 호흡을 맞추며 음악이라는 대화는 서양음악이나 국악이 똑같이 통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다”이라고 말했다. “결국 모두가 표현하고자 하는 궁극의 목적은 방법과 도구는 다르지만, 작곡가가 원하는 음악적 부분을 끄집어내기 위함이라는 것을 확인한 거죠.” (장윤성) ‘비비드:음악의 채도’에선 “각기 다른 작곡가의 서로 다른 색채”가 화사하게 그려진다. 장윤성 지휘자는 “세 작곡가의 연령대가 10년씩 차이가 나는데, 음악 역시 세대별 구분이 된다”며 “세대의 다양성과 함께 서로 다른 색깔이 나오고, 이 음악이 과연 국악인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시도가 많다”고 강조했다. 그 중 ‘대지의 시’는 장 지휘자가 꼽은 가장 혁신적인 곡이다. 그는 “자기만의 이야기와 자기 표현이 담기면서도 국악적인 중요한 뉘앙스를 놓치지 않은 곡”이라고 했다. ‘대지의 시’는 그간 이신우 작곡가가 악보 안에서 추구해온 세계와 다르지 않다. 꾸준히 가져온 분위기와 정서를 이 곡 안에서도 담아내며 치유와 회복의 순간을 비올라와 국악기의 만남으로 그려냈다. 다만 중점을 둔 것은 ‘비워내기’였다. “곡을 쓰면서 불필요한 소리를 너무 많이 채우지 않으려 했고, 조금 더 빼도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악보를 그렸어요.” (이신우) 장윤성 지휘자는 각각의 곡들을 구현하기 위해 “애써 아름다운 것을 꾸며내기 보다 살아있고 생기있는 사운드를 만들고, 화음을 채우고 멜로디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의 만남은 두 음악가의 갈증과 허기를 달래는 시간도 됐다. 이음 음악제를 통한 ‘연결’은 다양한 ‘음악적 가치’를 발굴하는 과정이다. 기존 서양 악단조차 시도가 드문 ‘위촉’을 통해 수많은 작곡가를 ‘발굴’하고, ‘재발견’하며, 악단의 새로운 레퍼토리를 만든다. 서양음악 대표주자들과의 조우로 국악과 서양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장르간의 틈새를 줄인다. 이러한 시도가 음악가들에겐 새로운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음악적 세계관을 확장할 발판이 된다. 이신우 작곡가는 “국내 음악계는 자국의 작품을 발굴하려 애쓰는 풍토가 아니”라며 “우리의 자산이 나오려면 시스템이 가동해야 하는데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장윤성 지휘자는 “한국에서 한국인의 음악을 발굴하고 다져나간다는 것은 다른 나라 음악이 아닌 나만의 자산이 생기는 것”이라며 “보다 심도있는 연구를 통해 우리만의 정체성이 담긴 새로운 레퍼토리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악관현악은 국악 전문 지휘자나 작곡가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굉장히 넓은 문이 열렸어요. 장르간의 교류를 통해 또 다른 언어가 만들어지고 있죠.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굉장히 중요한 우리 문화예요. 이 음악이 한국인의 정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세계적인, 가장 독특한 사운드를 담아낸 음악이에요.” (장윤성) 고승희 기자


출처 : 헤럴드경제 2022.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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