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MPHONIC POEM <YEOMILLAK>

for strings(2019)

위촉 및 헌정 : 세종특별자치시 (세종시 문화재단)


□ 챔버 오케스트라 버전

초연 : 세종솔로이스츠

-세계 초연 2019년 10월 4일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문화예술회관

-미국 초연 2019년 11월 21일 뉴욕 카네기홀


□ 관현악 버전 

초연 :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2019년 10월 29일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문화예술회관

여민락교향시 작곡가의 글

이 신 우


   작년 가을 여민락교향시 제작에 관해 작품 위촉 수락 여부를 묻는 전화 한 통과, 세종시문화재단 인병택 대표님, 세종솔로이스츠 강경원 감독님, 그리고 작곡가와 이들 모두를 연결한 최은규 음악칼럼니스트와의 12월 첫 만남으로 여민락교향시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이 위촉에 큰 애착을 가지고 일을 추진한 인병택 대표님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몰다우’를 언급하며 세종대왕의 문화적 성취와 정신을 담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탁월한 연주단체, 작품 제작에 대한 위촉자의 큰 열의와 훌륭한 행정 지원, 초연 이후 구체적인 국내외 연주 및 최종 교향곡 버전에 대한 묵직한 계획, 그리고 무엇보다 작곡가에 대한 전적인 신뢰는 이 작품을 작업해 나가는데 있어 내게 커다란 창작의 동력이자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당시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상주작곡가로 일하고 있던 터라 초연을 앞 둔 두 작품을 쓰면서 동시에 「여민락교향시」에 대한 자료조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세종실록을 비롯하여 세종대왕과 그의 업적에 대해 다각도로 다룬 다양한 문헌들과 세종 시기에 일어난 많은 음악적 성취에 대한 사료들을 찾아 읽었다. 애민정신이라는 단어로 널리 알려진 세종대왕의 리더십과 그의 가장 위대한 창작인 훈민정음, 그리고 음악적 유산인 여민락 등, 서적과 음악, 영화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내 나름대로 최대한의 자료를 찾아 연구했고 작품의 방향과 결을 정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독창적인 우리의 글자, 훈민정음을 다뤄보려 했다. 그러나 의미 전달이 불가능한 추상적인 음(音)과 글자를 연결하여 음악화 함에 있어 쉽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들에 봉착했다. 결국 훈민정음을 주제로 다루고자 했던 계획은 이후 만들어질 여민락교향곡에서 용비어천가를 직접적으로 노래하는 방식으로 시도해보기로 하고 잠시 접어두었다. 

   가사가 포함되지 않은 기악 음악은 추상적이다. 작곡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메시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 작업을 이십년 이상 오래 해 본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청중들은 창작 의도와 무관하게 각자 처한 상황과 감정, 경험에 의해 다양하게 음악 작품을 듣고 해석하고 이해한다. 특히 연주자의 독특한 해석이 가해지면 더욱 그러하다. 여러 시도들과 고민 끝에, 세종대왕의 창작물로 시대 속 변화들을 거쳐 현재 널리 연주되고 있는 ‘여민락’을 직접 인용하고 작품의 핵심 소재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국악은 과거에 여러 작품에서 소재로 다루어 보았고 또 영국 유학 시절 탐구했던 작곡기법 중 하나가 종묘제례악의 헤테로포니적 텍스처에 있었기에 낯설지 않은 소재였다. 여민락 1장의 앞부분을 국악 특유의 느린 템포를 유지하고 여민락 고유의 특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듣기에 힘들지 않도록 화성화하고, 삼박자로 분할된 리듬이 프레이즈 안에 내재되어 느린 템포 속에서도 운동감을 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더불어 꼭 다루고 싶었던 것은 세종대왕이 견뎌야 했던 고뇌의 시간들이었다. 당시 중국 성리학 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추진된 훈민정음 창제. 당연시되던 중국 아악의 연주 풍토에서 피어난 우리 고유의 향악. 이 모든 위대한 업적 이면에 세종대왕이 직면했던 엄청난 반대와 절망, 실패와 이를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는 대학의 간단한 제도 하나 바꾸는 것조차 버거운 나로서는 정말 감히 가늠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세종대왕의 내적 고뇌를 다룬 이 부분은 현악기 특유의 투명한 음색을 통해 점진적으로 고음역을 향해 상승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고난을 딛고 한 걸음씩 이루어나가는 세종의 고요하고 신중한 행보를 함축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곡의 거의 끝자락에 인용된 여민락과 만나 작품을 종결한다. 

   13분밖에 안 되는 짧은 곡에서 세종대왕의 수많은 업적과 위대한 문화적 성취들을 다룬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작품에서 앞으로 여민락교향곡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다양한 음악적 서사와 표정들을 최대한 압축하여 함축적으로 담아보고자 하였다. 이런 여러 표정들이 따로 놀지 않고 인용된 여민락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마치 대서사시의 서막을 알리는 큰 종소리와 같이 우리들의 마음 속 깊이 울릴 수 있기를! 

   이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있는 훌륭한 문화유산들이 다양한 작곡가와 연주자의 손길을 통해 앞으로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이 작품들이 한국을 넘어 많은 세계인들과 함께 널리 공유될 수 있기를 감히 소망해 본다. 

 

©2019 Shinuh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