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우교수의 음악이야기 <6> 브람스 독일레퀴엠 Brahms Ein Deutsches Requiem Op. 45
마치 무덤 속 망자(亡者)의 꺼져가는 심장박동 소리와 같이 희미하게 울리는 무겁고 느린 오르간 페달음, 첼로와 베이스, 그 위에 얹어지는 비올라의 느릿한 소리, 그리고 이어 합창을 통해 들려지는 세미한 음성,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denn sie sollen getrostet werden". 독일레퀴엠의 이 첫 소절은 브람스가 이 작품을 통해 진정으로 위로받기 원했던 그의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담담히 전해준다. 느릿한 템포, 거대한 프레이징과 깊은 호흡, 대단원을 향해 촘촘히 엮어 들어가는 폴리포니, 소리의 빛깔을 덧입은 말씀의 신비; 애통함, 눈물, 종말과 연한, 슬픔, 탄식, 희락과 기쁨, 위로, 그리고 마침내 얻게 되는 안식.
1856년 7월 29일 브람스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스승 슈만이 생을 마감했다. 정신병으로 고통스러운 생애 마지막을 보낸 슈만의 죽음은 9년 후 임종을 지키지 못한 채 마주한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브람스가 독일레퀴엠을 작곡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브람스는 슈만의 죽음 이후부터 이미 레퀴엠에 대한 생각과 구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1865년 노모의 사후 9주가 지난 4월부터 이 작품의 작곡에 본격적으로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 총 여섯 곡으로 구성되어 1867년 이 중 세 곡이 먼저 연주되었고 이듬해 4월 브레멘에서 여섯 곡 모두 초연되었으나 이후 소프라노 독창과 합창이 포함된 지금의 제 5곡이 추가되어 1869년 전체 7곡이 라이프치히에서 초연되었다.
레퀴엠은 통상 망자를 기리는 미사용 음악으로, 전례(典禮)의 식순에 따라 일정한 라틴어 가사를 사용한다. 브람스는 이 작품에서 통상적인 레퀴엠들과 달리 라틴어 가사를 쓰지 않았고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과 외경서에서 여러 부분을 발췌하여 가사로 구성하였다. 그러므로 전례로 인식되는 기존 레퀴엠들과 달리 브람스의 독일레퀴엠은 작곡가의 사상과 감정, 신앙의 색깔이 텍스트를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합창 파트가 포함된 음악 작품에 있어 텍스트의 구성은 음표 이전에 이미 작곡가 내면의 많은 부분을 보여준다. <제 1곡>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6), <제 2곡>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 1:24),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약 5:7),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벧전 1:25), <제 3곡>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사 35:10),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4~7), <제 4곡>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시 84:1,2,4), <제 5곡>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 16:22),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사 66:13), <제 6곡>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히 13:14),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1,52,54,55),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계 4:11), <제 7곡>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도다...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계 14:13)
폴리포니를 통해 극적으로 펼쳐지는 제 2곡과 6곡을 포함하여 한 시간이 넘는 이 대작을 듣고 난 후 청자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위로와 안식,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은 예술가로부터 전해지는 하늘의 메시지는 시대마다 다른 음악의 옷을 입고 오늘날에도 한결같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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