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hinuh Lee

[칼럼] 이신우교수의 음악이야기 5. 6년 전 메시지

2014년 5월 러시아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Sofia Gubaidulina)가 서울국제음악제의 초청으로 내한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필자는 재직 중인 대학의 현대음악시리즈에서 국제음악제 측과 공동으로 음악회와 강연을 기획했기에 그녀와 동행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 어떻게 동시에 작곡을 할 수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리고 작곡가로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소유와 아주 적은 돈으로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여 말했다. 그녀는 실제로 1992년 서방 세계로 넘어온 이후 함부르크 도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외부와의 소통을 거의 차단한 채 작곡에만 집중하며 살고 있다. 필자는 행사 기간 내내 그녀가 많은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보다 당시 작곡 중이던 작품 속에서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원한다고 느꼈다. 그녀는 방문 기간 중 매우 의미심장한 이야기 하나를 남겼다. 자신은 과거 소비에트 러시아 체제의 통제와 억압 속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풍요롭고 자유로운 현재가 작곡가들에게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대가 될 거라고. 당시는 이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더 그 의미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1931년 10월 24일, 러시아 타타르스탄 공화국에서 태어난 구바이둘리나는 1980년대 초 기돈 크레머가 그녀의 바이올린 협주곡 '오페르토리움 Offertorium'을 연주하면서부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유리 바슈메트가 그녀의 비올라협주곡을, 2007년에는 안네 소피 무터가 두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 '현재의 In Tempus Praesens'를 루체른페스티벌에서 초연했고 이 작품은 이듬해 무터와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도이치그라마폰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모두 심오한 종교적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첼로와 바얀(러시아의 아코디언), 현악합주를 위한 '가상칠언 Sieben Worte'(1982)은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로, 십자가상에서 남긴 그리스도의 일곱 말씀을 통해 대속(代贖)의 고통과 구원의 신비를 다룬다. 이 작품은 그야말로 '날 것'이다. 어떤 세련된 장식도 세공도 없이 펄떡이는 날 것의 소리들이 청자의 폐부를 찌른다. 같은 음역대의 첼로와 바얀의 결합은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의 육체적, 영적 고통의 의미를 청각적으로 극대화하고, 이와 극단적으로 대조된 현악오케스트라의 투명한 선법적 화음덩어리들을 통해 십자가의 고통 넘어 열려진 신비한 영적 세계를 투시한다. 구바이둘리나의 음악은 제동장치 없이 달려가는 이 시대에 마치 뭔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영적 예술 세계가 있음을 선포하는 선지자의 긴박한 음성처럼 들리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예술가들은 지리적, 역사적, 종교적 영향으로 영적으로 침잠하는 다소 은둔자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으며 서방 세계의 미학과는 차별화된 독자적인 세계를 추구해 왔다. 러시아를 떠나 이십년 이상을 독일에 거주하고 있으나 구바이둘리나의 음악에서는 서방 세계의 자유함보다 오히려 러시아도 독일도 아닌 자신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그녀가 본 어떤 '신비'를 평생토록 음악에 담고자 하는 노 작곡가의 결기가 느껴진다.


소비에트 러시아 시대의 억압도 통제도 없이 무엇이든 가능하고 자유로운 현 시대를 사는 작곡가들은 과연 예술적으로 과거보다 자유로운가. 필자는 현재를 사는 젊은 작곡가들을 걱정했던 구바이둘리나의 메시지의 의미를, 모든 것이 가능하고 자유롭고 풍요로운 이 시대에 결국 작곡가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였다. 소비에트 러시아 체제에서의 작곡가들은 비록 체제와 이념의 억압 속에 살며 자유를 갈망했으나 이 고난 덕분에 오히려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더욱 고군분투했다. 넘쳐나는 정보와 자기 홍보, '빅 미 Big Me'를 강조하는 과장되고 피상적인 현 시대는 체제와 이념의 서늘한 위협보다 오히려 더 예술가들을 위태롭게 한다. 최소한의 소유와 적은 돈으로 살며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구바이둘리나의 충고는 현대의 물질적 풍요와 분주한 삶 속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한 예술가들을 향한 일종의 경고이다. 코비드19로 인해 전 세계가 멈춰버린 지금, 멈춰선 인간으로 인해 오히려 푸르른 옛 모습을 회복해 가는 자연이 주는 메시지가 6년 전 그녀의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Link : http://www.pckworld.com/article.php?aid=8512774627

출처 : http://www.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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