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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신우교수의 음악이야기 2. 저마다의 인생을 살다 간 작곡가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한 사람의 작곡가가 남긴 작품이 수 백 년의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아 다른 문화권과 시간 속에서도 널리 향유된다는 사실은 언제 생각해도 놀랍고 경이롭다. 자신의 작품이 사후에 이와 같이 인류에 남겨진다는 사실을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어떤 작곡가라도 현세의 고된 삶 정도는 기꺼이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이미 현대음악사에 기록될 만큼 국제적인 인지도와 명성을 얻은 독일의 어느 작곡가가, 자신의 사후에도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은 클래식음악의 거장들과 동일하게 자신의 이름이 음악사에 기록될 수 있을지 두려워한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작곡가들의 작품은 작곡가 사후에 역사의 평가를 통해 새롭게 다시 조명된다.


음악사에 기록된 작곡가들은 그야말로 각각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다 갔다. 당대에 음악가로 큰 명성을 얻고 부와 명예를 누리며 영광스러운 삶을 살다 간 작곡가들이 있는 반면, 생계유지조차 어려워 가난과 질병 속에 살다 생을 마감한 작곡가들도 있다. 바로크의 두 거장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와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은 모두 뛰어난 작품을 남긴 위대한 작곡가이나 이들의 삶은 꽤나 대조적이었다.


헨델은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성공 이후 당대에 작곡가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독일은 물론 영국과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를 오가며 국제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사후에도 영국의 국가적인 작곡가로 존경 받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으니 그의 빛나는 음악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삶을 살았다 할 수 있겠다. 반면 바흐는 헨델과 달리 오직 독일에만 머무르며 20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부양하기 위해 매일 끊임없이 작곡을 해야 했던 루터교회 내 '생계형' 작곡가였다. 그는 평생 동안 대위법 기술을 토대로 쿠프랭, 륄리, 비발디를 비롯한 다른 작곡가들의 다양한 양식과 기술을 연구하며 이를 자신의 기법과 작품세계로 융화시켜 나갔으나 이미 시대적으로 고전주의 음악의 경향이 짙어져 바흐의 음악은 낡은 것으로 취급되었으며, 사후에 그는 곧 잊혀졌다. 그의 당대로만 본다면 바흐는 아마 유머나 번뜩임이 부족한, 우직하게 매일매일 작곡을 해나간 그저 그런 동네작곡가가 아니었을까. 작곡법의 기초이자 근간이며 온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이라 일컬어지는 바흐에 대한 훗날의 평가는 그러므로 낭만주의 이후에서나 시작된 일이다.


브루크너(Joseph Anton Bruckner,1824~1896)는 늦은 나이까지도 작곡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지 못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이자 오르가니스트였던 그는 화성법과 대위법 등 작곡법적 기술을 연마하는 데 오랜 시간 몰두했다. 발표하는 교향곡마다 비난과 혹평을 받았고 53세에 초연한 그의 교향곡 3번은 대부분의 청중이 나가버리고 연주가 끝날 무렵 객석에 고작 25명의 청중만이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브루크너는 그의 나이 60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교향곡 7번이 호평을 받으며 다른 교향곡들도 새롭게 조명되기에 이르렀으니 그가 작곡가로 생전에 제대로 평가를 받은 것은 고작 말년 12년 정도일 뿐이다.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는 생전에 작곡가로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과 성취 또한 누리지 못했다. 그의 죽음에 관한 여러 분분한 의견들이 있으나 이미 병약했었고 또한 가난했기에 주로 절이거나 상한, 신선하지 않은 음식을 오래 먹어 식중독으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의견도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연가곡집 '겨울나그네'는 수많은 성악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애창되고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예술가곡이나 이 노래를 작곡할 당시 30세였던 슈베르트는 내성적 성격으로 인해 사랑에 실패하고 고독한 삶을 살다 이듬해 가난과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작곡가로서 인정도, 부와 명예도, 사랑도 가정도 이루지 못한 31살 청년의 쓸쓸한 죽음이었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작품에 전념하면서도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인정욕구와 평생 싸운다. 세상의 냉혹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투철한 정신력으로 자신의 세계를 초지일관 밀고 나간 작곡가들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바흐는 매일 열심히 작곡을 해야만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지루한 삶을 산 가장이었다. 브루크너는 번듯한 위촉도 없이 혼자 교향곡을 썼고 완성된 곡을 오래도록 책상서랍에 소심하게 보관했다. 슈베르트는 실패한 사랑의 아픔과 슬픔, 상실과 외로움이라는 인간적인 감정들을 그의 가곡 속으로 쏟아냈고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어떤 작곡가들은 때로 생애 최고의 명성과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어떤 작곡가들은 매일 매일을 작곡 속에서 보내는 그저 반복적이고 평범한 일상을 살다 가기도 했다. 작곡가들에게는 그들의 작품이 최고의 보상이다. 음악 외에 자신의 수고에 대한 다른 보상을 원할 때 삶은 불행해진다. 성경 속 가르침은 오늘날 예술가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창작'이라는 신성한 노동을 전 생애를 통해 성실히 계속해 나가라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신우 교수/서울대 음대 작곡과


출처: 한국기독공보 http://www.pckworld.com/main.php


Link: http://www.pckworld.com/article.php?aid=8407587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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