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hinuh Lee

[음악춘추] 작곡가 이신우 삶의 위대한 신비의 깊이를 탐구하며 인간 존재의 근원, 자연, 초월적 세계를 다루다 <죽음과 헌정>, <틸 던> 음반 발매

Updated: Feb 7

2022년 1월호 커버스토리


지난 12월 10일 소니 코리아를 통해 작곡가 이신우의 새로운 음반 두 장이 발매되었다. <죽음과 헌정(Death and Offering)>은 헝가리 다비드 포퍼 국제 첼로 콩쿠르 1위를 차지한 첼리스트 제임스 김과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틸 던(Till Dawn)>은 2019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의 바이올리니스트 스티븐 김과 피아니스트 박영성이 함께 작업했다. 특히 그녀는 이번 음반에서 두 명의 젊은 아티스트들, 첼리스트 제임스 김과 바이올리니스트 스티븐 김과의 협업이라는 과감한 시도를 통해 그들의 새로운 감각과 음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작품에 담아냈다. 작곡가 이신우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궁극적으로 추구 하는 하나의 주제는 사랑이다.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성숙을 바탕으로, 내면의 깊이와 아름다움이 음악으로 흘러가길 소망하는 작곡가 이신우의 음악 여정을 특별히 이번 음반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인터뷰를 통해 작곡가 이신우의 음반에 수록된 작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음반 작업에 협업으로 참여한 첼리스 트 제임스 김의 소감도 함께 들어보았다.


음반 <죽음과헌정>과 <틸던> 발매소감

2014년에 Dux에서 피아노를 위한 코랄판타지로 앨범을 낸 이후 7년만이에요. 제 주요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음반으로 정리하고 있어 숙제를 또 하나 마친 기분입니다. 특히 바이올린, 첼로 솔로와 피아노와의 듀오 작품 들은 연주자들이 많이 찾는 편성이라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자주 연주되는 바이올린, 첼로 정규 레퍼토리로 정착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이번 음반의 타이틀

살다보면 인생의 굴곡이 있기 마련인데 지난 5년은 인생의 모순과 그늘진 부분들, 미성숙한 인격, 자기중심성으로 인한 관계의 문제들, 상실, 거절감, 고독 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틸던」은 약간 에세이같은 자전적 작품이고, 「죽음과 헌정」은 기독교 첫 순교자 로 알려진 웨일즈 출신의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Robert Jermain Thomas, 1839∼1866) 선교사의 삶을 바탕으로 만든 곡입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중국 땅에서 신혼의 아내 캐롤라인을 잃고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1866년에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조선 땅으로 향했다가 대동강가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는데요, 고난과 아픔속에서 당시 척박했던 조선땅으로 그를 이끈 힘이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작품이 「죽음과 헌정」입니다. 같은 주제로 작년에 런던 오페라 스튜디오의 프로젝트 12:42에서 바리톤 아리아로도 작곡되었는데요, 150여 년이 지난 2020년, 한국의 한 청년이 토마스 선교사의 삶의 흔적들을 찾아 평양을 방문한다는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한 아리아였어요. 「죽음과헌정」의 경우 이 곡을 연주하는 첼리스트의 시각으로 토마스 선교사의 삶의 신비를 추적하여 이를 음악으로 풀어내 보는 거죠. 공교롭게도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첼리스트 제임스 김의 나이가 당시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했을 때와 같은 27세였습니다.


음반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인간의 ‘연약함’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인간은 늘 제 음악에 가장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사실 삶의 그늘진 측면에 대해 그동안 많이 다룬 것 같아요. 종교적 테마를 다룰 때에도 구원에 앞서 인간의 죄성에 대해 길게 다룬 탄식, 라멘테이션(lamentation)이 제 작품에 늘 깊게 자리했습니다. 위로와 치유, 회복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의 본질에 대해 다루고 싶었어요. 사실 상처나 어두운 측면들은 그걸 용기있게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굳이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늘지고 굴곡진 측면들을 내어놓고 말할 수만 있다면 인간 스스로에게는 회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어떤 본능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작품은 인간의 부정적이고 상처 난 측면들을 많이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을 향한 신적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긍정과 회복, 일종의 따뜻함이 배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음반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

타이틀곡인 「죽음과 헌정」과 「틸 던」이에요. 삶에 존재하는 고통과 어두움을 현실적인 시각에서 접근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초월적 세계를 다룬 다른 곡들보다 좀 더 냉정하게 파고들려 했습니다. 쉽게 회복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관조(觀照)하려 했습니다. 동시에 연주자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완성했기 때문에 연주적인 측면에서도 이러한 주제를 작곡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현악기 소리의 넓은 스펙트럼을 활용해 좀 더 섬세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반 감상을 위한 가이드라인

첼로 앨범은 실험적이고, 스타일적인 측면에서 다양합니다. 20세기 유럽 현대음악 경향이 반영된 「표현」과 힙합을 베이스로 한 「카프리스 3번」까지 포함하니까요. 「죽음과 헌정」은 2분에서 6분 정도의 짧은 일곱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악장의 스타일과 의도가 매우 분명하여 음악을 잘 모르는 분이 듣더라도 직관적으로 뭔가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제임스와 일리야의 연주가 무척 훌륭해요. 작곡가의 의도를 기대 이상으로 표현해 주었고 정말 만족스러운 콜라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매 순간 소리의 밀도가 상당히 높기때문에 집중해서 듣는다면 그 흐름을 온전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편창」은 제임스가 프레이징과 톤, 타이밍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해서 내놓은 그야말로 ‘힐링’ 피스입니다. 그리고 「표현」은 어 찌보면 좀 진부해 보일 수도 있는 20세기적 어법을 확장된 테크닉 속에서 ‘재미있게 흘러가는 속도’와 ‘감정선’으로 연결해 냈기 때문에 제임스 김만의 재기발랄하고 감각적이면서도 세련된 형태로 나왔습니다.


녹음 마스터링 측면에서 본다면, 첼로 앨범은 악기 자체의 잔향을 살려 보다 다이렉트하게 포커싱된 음향으로, 바이올린 앨범은 이보다 훨씬 풍성한 잔향을 통해 분위기와 톤을 만들었어요. 작품과 악기, 연주자의 특성을 감안하여 정한 컨셉이지요.


스티븐 김의 바이올린 톤은 투명하면서도 서늘하게 가라앉은 듯한 음색인데, 뭔가 모를 처연한 느낌이 있습니다. 영성씨 피아노 특유의 영롱한 빛깔과 따뜻함이 어우러져서 묘하게 조화가 되었습니다. 드라마틱하거나 과장된 표현이 없고 담백하고 지적이며,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세련된 연주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바이올린앨범에는 30여분 길이의 두편의 소나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대서사시를 읽는 긴 호흡으로 감상하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각 앨범에 수록된 작품의 성격도 다르지만 바이올린과 첼로라는 악기 자체가 워낙 다르고, 두 연주자가 톤부터 프레이징, 음악의 해석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다른 성격의 뮤지션이기 때문에 이를 주목해서 들어보시면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음반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

공연은 일회성이기 때문에 몇 번의 리허설 후 끝나버리는데 반해 음반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리허설과 녹음 기간을 필요로 하지요. 그래서 연주자들과 더 자주 만나 대화하고 또 집중적인 밀도 높은 리허설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적어도 바이올린과 첼로라는 악기에 대해 원 없이 들었고 가까이서 보잉이나 톤 등에 대해 관찰하고 실험해 볼 수 있어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음반이라는 결과물만큼이나, 연주자들과 작업한 시간들이 제게 음악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과 보낸 시간이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한편 이번 음반은 처음부터 끝까지, 홍보와 기자간담회를 제외하고는 제작과정 모두 다 제 손을 거쳤어요. 작곡 뿐만 아니라 기획,매니징 등,제가 안 움직이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거나 펑크가 나는 식이었지요. 그동안 대학에 재직하면서 쌓인 여러 경험들이 있었고, 음반 역시 뭔가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제 기질과 잘 맞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힘든 점은 제가 작곡과 기획, 소소한 매니징 일까지 모두 감당했어야 했기 때문에 다음에는 작곡가나 기획자로만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 일하면 좋겠습니다. 작년에 제가 연구년이었기 때문에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고, 학교에 복귀한 후에는 앨범 준비기간 내내 거의 초인적인 힘으로 일했지만 한번은 할 수 있어도 계속 이렇게 하기는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첼리스트 제임스 김과 바이올리니스트 스티븐 김과의 협업 계기

스티븐 김은 2015년에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준결선 과제곡이었던 제 「자연의 시편」을 연주해서 알고 있었고 2019년에 연주된 제 교향시 여민락의 세종솔로이스츠 리더로 다시 만났어요. 제임스도 그 때 만났지요. 이 작품이 초연 후 한국과 뉴욕에서 여러 번 연주되었기 때문에 연주자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어요. 앨범을 제안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IBK챔버홀에서 제 「여민락 교향시」와 함께 연주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현악 삼중주」 때문이었는데요, 이들의 톤과 음악, 감성이 제가 추구하는 세계와 결이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제가 가르치는 서울대에서 작곡과 수업 뿐만 아니라 다른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지도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제 작품을 치겠다고 들어봐 달라고 찾아오는 학생들도 많아지고요. 솔직히 제가 두장이나 되는 앨범을 이렇게 저와 다른 세대의 젊은 연주자들과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고, 그만큼 이 두 현악연주자들의 재능과 음악이 당시 제게 무척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음악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지식이 제가 추구하는 세계와 잘 맞기도 했고 또 이들이 낼 수 있는 톤의 범주가 상당히 넓고 다양했기 때문에 제 음악의 면면을 잘 구현해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제 작품이 악보에 적힌 음표와 음표 사이의 의미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연주적 측면에서의 다양한 시도와 적용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행간의 의미를 잘 읽어내지 못하면 작곡가의 의도가 실제 연주로 온전히 전달되기가 어렵습니다.


의도와는 다르지만 연주자가 구현한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 부분

대부분 ffff라고 적어도 작곡가가 만족할 만큼의 볼륨이나 강렬한 어택(attack)을 듣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요. 그런데 제임스는 예를 들어, ffff, extra pressure 라고 기보된 경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볼륨과 어택 뿐만 아니라 하나의 독특한 ‘캐릭터’로서의 톤을 만들어 냈어요. 작곡가의 의도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소리와 주법을 캐릭터로 확장해 낼 수 있는 지적 탁월성과 영민함을 갖추어 작곡가들이 같이 작업하기에 정말 좋은 연주자입니다. 일리야의 경우 워낙 갖고 있는 소리의 팔레트가 넓어서 <죽음과 헌정>이 제임스의 첼로와 더불어 굉장히 스타일리시하고 깊이 있고 규모 있게 나왔습니다.


이번 음반 작업을 위해 연주자들에게 특별히 요청했던 부분

이 앨범은 기획 단계부터 제임스, 스티븐과 가까이서 상의하면서 시작했어요. 많은 이메일이 오갔고 여러 채널로 소통했습니다. 저는 연주자들이 단순히 작곡가의 음반에 연주로 참여한다기보다 자기 음반으로 생각하고 작업하길 원했어요. 그래서 연주자 사진을 커버 뒷면에 넣었고 연주자 노트를 작품 주 해설과 작곡가 노트와 더불어 프로그램 노트에 수록했어요. 앨범 전체의 주제를 상징하는 이미지 사진에 연주자를 피처링해서 찍기도 했고, 헌정작품의 제목을 직접 짓도록 요청해서 두 연주자가 이 프로젝트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실제로 스티븐 김에게 헌정된 카프리스 1번의 제목 「꽃」은 스티븐이 직접 지은 거예요. 「죽음과 헌정」, 카프리스 3번 「tangy(짜릿하게)」 역시 제임스의 아이디어였어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연주자가 프로젝트의 주최로서 참여해야 더 좋은 연주가 나올 거라 생각했고,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젊은 연주자들이기 때문에 제 음악이 이들의 첫 솔로 앨범으로 나가는 것 또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앨범은 작곡가 이신우의 앨범인 동시에 제임스 김, 스티븐 김 두 아티스트의 앨범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느끼는 본인의 작품

이번 앨범을 통해서 많은 걸 쏟아내서 앞으로 조금 다른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는 제 감정이 작품에서 쓰고자 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으면, 즉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한 음도 쓰지 못했는데요, 이제 감정을 넘어 보다 내면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정신,즉 혼(soul)의 세계를 넘어 진정한 영의 세계로요. 이게 좀 말로 하기가 어려운 테마인데요, 아무튼 감정, 지성 보다 더 깊은, 인간의 창조 당시의 영(spirit)의 상태를 회복하는 일이랄까요. 바흐나 메시앙, 브람스의 「독일진혼 곡」 등에서 느껴지는 세계와도 통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동시에 그런 주제 외에 온전히 악기 자체, 음악 자체에만 집중하는 작품도 써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

이 앨범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제게 의미가있습니다. 먼저 작곡가 이신우의 바이올린과 첼로 주요 작품들을 담 았다는 점이고, 또한 세계무대로 향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재능있는 두 현악 연주자인 제임스 김, 스티븐 김의 첫 솔로앨범이 모두 제 작품만으로 나왔다는데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작곡가인 동시에 대학에서 오래 가르쳐 온 교육자로서 이 점을 매우 보람있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이 작곡가와 연주자가 협업하여 만들어지는 순수한 ‘창작’ 음반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글·편집_구희주


출처 : 음악춘추 2022년 1월호 Vol 317

Link : http://www.eccs.co.kr/magazine/2022/음악춘추-2022-01월-3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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