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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hinuh Lee

[리뷰]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특별콘서트

Updated: Jan 15, 2020

'현대인의 영혼 일깨우는 이 시대의 음악'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완전히 새로운 음향세계였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익숙한 악기 소리가 이토록 참신하게 들릴 수 있는가.

플루트와 바이올린 등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 소리는 마림바를 활로 긋거나 피아노 현을 문지르는 현대음악의 여러 기법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며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었다.

그것은 오케스트라의 음향 가능성을 뛰어넘은 새로운 세계이자 전통 클래식 음악의 표현법을 넘어선 이 시대의 살아있는 음악이었다.

지난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현대 음악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작품을 연주하는 특별 콘서트가 열렸다.

서울국제음악제의 초청으로 내한한 구바이둘리나는 지난 23일 서울대 강연에 이어 26일 저녁 음악회에 참석해 그녀의 신작 두 대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두 개의 길'의 세계 초연 무대를 지켜봤다.

청중은 구바이둘리나의 신작을 비롯해 바리톤과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칸타타 '루바이야트', 피아노협주곡 '인트로이투스' 등의 영적인 음악 세계에 깊이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역시 이 시대의 감성을 담은 구바이둘리나의 음악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한 힘이 있었다. 저녁 공연 첫 곡이었던 성악곡 '루바이야트'는 바리톤 정록기의 혼신을 다한 노래로 음악회 초반부터 강렬한 인상을 줬다.

중세 페르시아의 4행 시집을 바탕으로 한 '루바이야트'는 "아, 너의 손에 내 슬픈 영혼을 받아라"는 탄식으로 시작해 끊임없이 운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을 노래한 작품이다.

오케스트라의 악기 편성은 소규모 현악기 그룹과 기본 목관 악기 각 4대, 호른 두 대와 트럼펫, 트롬본, 그리고 여러 타악기와 피아노로 결코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각 악기의 음색을 배합하는 방식은 매우 독특했다.

긴장감을 자아내는 호른 고음부, 트롬본 슬라이드를 이용한 끄는 소리, 피아노 현을 문지르는 신비로운 소리가 우리 내면의 갖가지 감정을 일깨우며 인간의 고통을 노래한 '루바이야트'의 내용에 더욱 빨려들게 했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주목할 작품은 구바이둘리나의 신작 두 대의 첼로협주곡이었다. '두 개의 길'이란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원래 1999년에 두 대의 비올라를 위한 협주곡으로 초연됐으나 구바이둘리나는 이 작품을 두 대의 첼로로 편성을 바꿔 완전히 개작했고, 이번 공연에서 세계 초연됐다.

이 작품에서 첼로 두 대는 각기 '세속적인 사랑'과 '종교적 사랑'을 의미하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는데, 특히 두 대의 첼로 독주와 오케스트라의 독특한 악기 조합은 매우 특별했다.

한 대의 첼로가 첼로로서는 연주하기 어려운 고음역에서 탄식하고 울부짖으며 온갖 감정을 쏟아 붓는 동안 오케스트라에서는 튜바와 트롬본 등 저음역 악기들이 묵직한 소리로 세속의 무게를 표현하는 듯했다.

반면 또 다른 첼로는 세속을 달관한 듯 저음으로 같은 선율을 반복하며 관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이 두 명의 타악기 연주자가 마림바를 활로 긋는 신비한 소리로 비현실의 세계를 그렸다.

'두 개의 길'에서 바로크합주단과 협연한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거와 성현정의 호소력 있는 연주 덕분에 작품 속에 나타난 두 가지 세계는 더욱 분명하게 전해졌다.

26일 저녁 공연에 앞서 오후 5시에 열린 음악회에서는 '구바이둘리나와 동시대 음악가들'의 작품들이 연주됐는데, 그 중 구바이둘리나의 작품과 더불어 이신우의 신작 '라멘트-오 시온의 딸!'은 주목할 만 했다.

구약 성서 '예레미아의 애가'를 바탕으로 한 이 곡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반음계적인 고통의 선율과 신성한 선율이 대비를 이루며 각별한 감동을 줬다.

구바이둘리나의 신작 초연을 비롯해 동시대 음악가들의 다양한 작품이 소개된 이번 서울국제음악제는 그 어느 때보다 충실한 프로그램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구바이둘리나의 내한을 계기로 이 시대 감성을 이 시대의 음악 언어로 노래한 현대음악이 좀 더 보편화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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